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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의 비밀


몽유도원도의 비밀

<이영호> 저 | 빅터리하우스

출간일
2018-03-31
파일형태
PDF
용량
2 M
지원 기기
PC
대출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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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개
목차
한줄서평

콘텐츠 소개

몽유도원도를 따라가는 감춰진 역사의 미스터리(총343쪽)

역사는 팩션(FacTion)이다.
이른바,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섞은 글이다. 최소한 이 글을 마친 후에야 쓰게 되는 ‘글 들어가며’에서 글쓴이의 변을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궁색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몽유도원도의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며 이야기 끝을 맞이한 ‘작가의 변’치고는 치밀하지 못한 고약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몽유도원도 속에 숨겨진 역사의 비밀과 안견의 수수께끼를 찾아가는 과정의 오묘함이 ‘팩션’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사실을 마치 사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안견의 재능과 같은가.

그래서 ‘몽유도원도의 비밀’은 오랜 산고 끝에 나온 생명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누군가 기록해야만 했던 숙제를 이제야 끝낸 홀가분한 작품이라고 봐야 했다.
지난 1447년 4월 23일 당대의 걸출한 화가 안견으로부터 몽유도원도를 받아든 안평대군이 말하길 ‘후대에 1천년이 지나 나의 뜻을 알리라’고 했을 때 지금이야말로 57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숙제를 빨리 끝내서 홀가분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붙이자면, 지난 2009년은 한국에 두 가지 작품이 들어온 시기다.

몽유도원도와 또 하나의 물건이 한국에서 선보였다. 2009년 9월 29일부터 11월 8일까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통해 진품 ‘몽유도원도’가 1447년에 세상에 나온 지 562년 만에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의 도서 소장고를 벗어나 고향 땅인 서울에 60일간 머문 기간이며, 같은 해 11월 28일엔 미국의 기업이 만들었다는 스마트폰이 2007년 1월 9일에 미국에서 첫 발표되고 2007년 6월 29일 오후6시부터 미국 내에서 첫 공표되어 판매되기 시작한 것치고는 2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한국인들 손에 쥐어졌던 시기다.
2009년이란 시점상 두 물건(?)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유명해진 후 외국에서 선보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역사가 그렇다. 그래서 몽유도원도 이야기는 한국과 일본, 미국의 역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두는 이유는 이 소설에 세계의 역사를 뒤적이며 꺼낸 몽유도원도의 발자취를 우선 기록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우리 역사에 포함되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까지 들먹이며 몽유도원도의 발자취에 얽혀 꼬인 매듭을 풀 열쇠로 사용했다는 고백이다.

그만큼 몽유도원도는 복잡했다.
무엇보다도 몽유도원도의 비밀을 속 시원히 풀어줄 안견에 대한 기록조차 겨우 몇 점밖에 지나지 않은 그의 작품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현실이 장애가 되었고, 국내엔 몽유도원도의 복제본(용산 국립박물관)과 영인본(충남 서산 지곡면 안견기념관)만 남아있다는 게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그나마 종로구 부암동에 꿈속에서 본 몽유도원도를 발견한 안평대군이 만들었다는 무계정사 역시 수양대군(세조)이 1453년 계유정란의 혼돈 속에서 흔적을 지워버려 지금의 ‘터’만 남게 되었다는 역사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몽유도원도의 발자취를 따라갈 첫 실마리는 공교롭게도 몽유도원도 속에서 나왔다. 천재 화가 안견의 용의주도함에 글 쓴 이 역시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이 생겼다.
1447년 전후부터 급박하게 돌아가는 조선의 정세를 간파하고 자신과 조선의 미래를 내대본 안견의 식견이 고스란히 몽유도원도에 숨겨져 있었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년)가 그린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7년)이 조선의 천재 화가 안견에 의해 탄생된 몽유도원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세종 때부터 궁궐 내에 도화서에 근무한 것으로 추측되며 1447년 몽유도원도를 3일 만에 그려낼 경지에 오른 안견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40~50대 나이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화가였을 것이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안견과 비슷한 나이에 2년에 걸쳐 완성한 ‘최후의 만찬’과는 실력의 경지 측면에서도 비할 바가 아니지 않을까?

여기서 비교되는 안견의 나이는 그의 아들 ‘안소희’가 과거에 급제(1478년)하여 ‘감찰’직에 임명될 것인지 여부를 기록한 1479년 성종실록(성종 9년)에 근거한 것이고,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할 수 있던 나이제한은 없었지만 대부분 30대 중반의 나이에 급제한 걸로 기록된 점이다.

1479년 무렵에 안소희의 나이가 30대 중반이라고 한다면 1447년 무렵엔 세종의 총애를 받고 도화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안견의 나이가 40대에서 50대였을 것이란 근거를 들었다.

이처럼 당시 명나라에서 전해진 유교사상을 통해 불혹(不惑)의 40대, 지천명(知天命)의 50대의 삶을 살았던 안견이었다.

그래서 조선의 왕조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익히 예견하고 자신의 가족의 안위를 세파의 급변에서도 올바로 처신하면서도 도화서에 근무하는 화원으로서 후대에 전하고자 역사의 비밀을 몽유도원도에 그대로 담아냈다고 보는 이유다.

‘몽유도원도의 비밀’은 작가가 발견한 암호와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감춰진 역사의 비밀을 독자가 함께 찾아보는 작품이기도 하다.

- 안견이 자신의 낙관을 몽유도원도의 우측에 찍은 이유가 무엇일까?
- 안견이 안평대군에게 전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안평대군과 안견이 후대 1천년이 지나서야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1447년에 몽유도원도 속에 감춰둔 수수께끼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하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목차

서서히 드리우는 역사의 그림자

왕자의 그림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두 개

몽유도원도를 둘러싼 조선황실의 비밀

몽유도원도에서 사라진 남자

무계정사에서 지워진 발자국

다나까(田中) 그리고 김교수

진짜 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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